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마리아 친 압둘라 (문단 편집) == 생애[* 본인의 [[http://www.themalaymailonline.com/malaysia/article/10-things-about-maria-chin-abdullah-social-activist#BGzepciIKHh7qKfF.97|인터뷰]]에 기반한 내용인만큼 주의를 요한다.] == 1956년, [[영국]]에서 중국계 말레이시아인 부모의 딸로 태어났다. 출생 당시의 이름은 "매리 친 친 리엔(Mary Chin Cheen Lian)"이었으나, 훗날 [[이슬람]]으로 [[개종]]한 뒤 지금의 이름으로 개종한다. 참고로 "매리"라는 이름은 알다시피 [[성모 마리아]]에서 온 것인데, 즉 전형적인 [[기독교]] 이름이다. 이러고 보면 부모가 독실한 기독교인일 수도 있겠으나, 훗날 본인은 인터뷰에서 자신의 부모는 기독교인이 아니었고, 그냥 영국 쪽에서 제안해 준 이름이라고 밝혔다. 이후 [[말레이시아]]로 귀국하여 학교를 다녔으나, 이 시절 영문의 이유로 여성인권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말레이시아의 여성 인권 문제 등을 의식하며 관련 활동을 벌이기 시작했다. 1974년 [[런던]]에 있던 중 유누스 알리(Yunus Ali)라는 [[말레이인]] 남성(그것도 같은 말레이시아인)을 만났는데, 그는 당시 사회활동을 하다가 정부의 눈 밖에 나서 현지에서 망명 중이었다. 둘은 훗날 마음에 맞아 결혼하기에 이르르고 이후 자녀까지 출산했다. 1987년 [[마하티르 빈 모하마드]] 정권의 일명 "금지 작전(Operasi Lalang)"으로 재야 인사들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이 시작되었고, 이 때 유누스도 구속되었다. 그의 부인으로서 당시 마하티르 정권의 폭정을 똑똑히 본 마리아는 곧바로 남편을 따라 사회운동에 전념하기 시작했고, 결국 본인도 똑같이 탄압을 받았다. 이후 2006년 [[버르시]]라는 재야운동 단체를 결성하고 현재까지 집회를 줄곧 벌이고 있으며, 2010년 남편이 신장병으로 죽자 그에 힘업어 사회활동을 벌이고 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